Strawberry house

Strawberry house, Busan, South Korea, 2016

 Photo by Young-moon Ha 하영문

Strawberry house Movie – > https://youtu.be/7lJFEUBv3nU

19. October. 2015_ Motgol, Busan, South Korea

15. March. 2016 _ Motgol, Busan, South Korea

6. Jun. 2016_ Motgol, Busan, South Korea

The Strawberry City

Suzy Park (independent curator, B-ART editor)

There was time when the so-called 21st century version of nomad, free and creative, was talked about.  The life of a nomad that quickly adopts to ever-changing phenomena and cultivates creation from a barren desert was revered as great value.  In Yijing studies, yima (驛馬) meaning post-horse, the god of migration, moving, and change, was regarded as calamity affixed to the character sha (煞) meaning “strike dead.”  But today life without yima is even considered to be dull and plain.  However, this nomadic life can only be positive when led and migrated voluntarily at will.  From the view of urban refugees who are forced to leave, the idea of a nomad is merely a disease that hampers their everyday lives.  In Busan, there are 99 redevelopment districts, eating the city’s landscape away day by day into ruins. In Motgol[1] “demolition village” last fall, Jazoo Yang, who carried out the project Dots: motgol66 [2],was surprised at discovering the wall of another house in the area.  The artist started calling that place a “strawberry house.”

One can easily find the wall grafftied with these words written: deserted house, demolishment, and illegal occupation.  They are uniformly sprayed in highly saturated red, and by any means—size, font, scribbled location—seem vulgar and violent.  Motgol was the same. Then a wall of one of those deserted houses was painted with a skull besides the developer’s scribbles, different in one thing.  That is, the deserted house, demolishment, and illegal occupation letters were covered up by the same red colored strawberry painting.  The strawberry images are not particularly well rendered and it indeed looked clumsy and odd because they were there to cover up the scribbled letters.  However, the strawberry was certainly a language.  The “strawberry” was a message that “people are still here,” “people are going to stay here longer.”  In other words, it was indispensable street art.

Jazoo Yang volunteered to be the messenger transferring this language to a redevelopment area Oncheonjang[3].  Printing out the strawberry image in a large scale and putting it up onto the rooftop that used to a kitchen garden, onto a water tank that is no longer in use, and onto the window that has no one to look out through it.  The scene of strawberry houses filmed by a drone looks as if they are sending a rescue signal. Sadly, words that were invisible to the neighbors, calls for help that can be seen from above were all there. Other strawberry houses created by the artist as if doing parkour will eventually be destroyed as in the strawberry houses in Motgol. However, the voice of subaltern heard by the artist is always ready to be visible only if our senses are here now.

Interestingly enough, the severity of poor houses and the number of the word “deserted house” sprayed in red are in parallel.  There are plenty of empty houses whether they are to be demolished, or to be newly built in wait for new tenants.  Yet, no house is available to me. Besides, life that is constantly being forced to migrate and is exposed to the threat of migration is just too busy, in itself, to be able to pay attention to others’ pain.  It is a vicious cycle.  Are you at home reading this now?  Is that house not another strawberry house?

——————————————————————————————————————————————————————

1.A name of a village within the housing redevelopment district in Daeyeon-dong, Busan, Korea.
2.A project of Jazoo Yang in which the artist left her thumb finger prints on the wall of a deserted house within the redevelopment district. Currently, the work is only available as photographs, since the house was demolished.
3.A name of a village within the housing redevelopment district in Busan, Korea.

딸기 도시

박수지(독립큐레이터, B-ART 에디터)

자유롭고 창조적인 21세기형 노마드nomad가 한창 오르내리던 때가 있었다. 변화무쌍한 것들에 빠르게 적응하고, 불모지에서도 생성을 이끌어내는 노마드적 삶이 좋은 가치로 추앙 받기도 했다. 역학에서는 예부터 역마라는 이동, 이사, 변동의 신에 ‘살’을 붙여 액운으로 여겼지만, 요즘 세상에 역마가 없으면 재미없고 단조로운 삶으로 일컬어지기 일쑤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노마드의 삶이 긍정적으로 여겨질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발적이고 주체적으로 이동을 선택했을 때의 이야기다. 강제 이주를 종용 당하는 도시 난민의 상황으로 보면 ‘노마드’는 일상을 불가능하게 하는 병폐일 뿐이다. 부산에는 현재 99곳의 재개발 지구가 있으며 하루가 다르게 도시 풍경을 폐허로 잠식시킨다. 지난해 가을 못골 (주:부산 남구 대연동의 주택재개발지역에 속한 마을 이름) 철거 촌에서 (주:철거촌 빈 집의 담벼락에 엄지손가락의 지문을 남긴 양자주 작가의 2015년 작업. 현재는 집이 허물어져 사진으로만 볼 수 있다.) 작업을 한 바 있는 양자주 작가는 못골의 또 다른 집 담벼락을 발견하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 했다. 작가는 그 곳을 ‘딸기집’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철거촌에 가보면 ‘공가’, ‘철거’, ‘알박기’라고 쓰인 벽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하나같이 높은 채도의 빨간 색 스프레이로 쓰였으며, 그 크기로 보나, 글씨체로 보나, 휘갈겨놓은 위치로 보나 우악스럽고 폭력적이기 그지없다. 못골 역시 그랬다. 그중 한 공가의 노란 담벼락은 개발사 측의 낙서 외에 해골 등이 그려져 있기도 했는데, 한 가지가 달랐다. 바로 ‘철거’ ‘공가’ ‘알박기’를 같은 색의 빨간 딸기 그림으로 덮어놓았다는 것. 딸기는 잘 그려진 예쁜 모양새도 아니었고 낙서를 가리기 위한 것이다 보니 그냥 보면 어설프고 생뚱맞다. 그러나 딸기는 분명 하나의 언어였다. ‘여기 사람이 있다’, ‘이곳에서 더 살 것이다’라는 아주 분명한 메시지가 바로 ‘딸기’였다. 다시 말해 필수불가결한 스트리트아트였던 셈이다.
양자주 작가는 이 언어를 온천장의 재개발 구역에 옮겨놓는 전도사를 자처했다. 딸기 이미지를 대형으로 프린팅 해 텃밭이 있었을 옥상에, 이제는 사용할 사람이 없는 물탱크에, 더 이상 내다볼 이가 없는 창가에 붙여놓았다. 드론으로 촬영된 딸기집들의 풍경은 마치 구호 요청을 보내오는 신호 같다. 유감스럽게도 이웃의 시선으로는 보이지 않는 말들, 더 높은 곳에서 읽힐 수 있는 구조 요청이 그곳에 있었다. 파쿠르parkour (주:한국에서는 ‘야마카시’로 통용되는 훈련의 한 종류. 아무런 장비 없이 맨몸으로 건물과 건물 사이를 건너뛰고, 도심의 건물을 맨몸으로 기어오르기도 해 익스트림 스포츠의 하나로 보기도 한다.) 를 하듯 옥상과 옥상 사이를 건너 다니며 작가가 만들어낸 또 다른 딸기집들은 못골의 딸기집이 그러했듯 끝내 부서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작가가 읽어낸 당사자subaltern들의 목소리는 언제고 가시화될 준비가 되어있다. 우리의 감각이 지금 여기에 있을 수만 있다면.

희한하게도 하우스 푸어의 심각성과 빨간 스프레이로 적힌 ‘공가’의 수는 비례한다. 철거당할 공가든, 새로 지어져 분양을 기다리는 공가든 빈 집은 많지만 내가 살 수 있는 집은 없다. 게다가 자꾸만 이주 당하는 삶, 이주의 위협이 가해지는 삶은 타인의 고통에 관심을 갖기엔 너무 바쁘다. 악랄한 순환구조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지금 집에 있는가? 그 집은 또 다른 딸기집이지 않은가?